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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냄새가 나는데?

by 애드백서 2025. 6. 7.

냄새라는 건 참 묘해.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데, 사람의 기분을 쥐락펴락하지. 어떤 냄새는 딱 맡자마자, 기억 저편 어딘가에 묻혀 있던 장면을 뚝 떼서 눈앞에 던져줘. 그냥 스친 냄새 하나에 갑자기 그때 그 골목, 그 사람, 그 여름, 그 순간이 확 떠오르기도 하잖아.

 

여름 냄새는 특히 더 강렬해. 일단 아침부터 습하고 눅눅한 냄새가 문을 열자마자 반겨. 빨래가 다 안 마른 듯한 꿉꿉함. 시멘트 바닥에 한껏 올라온 열기랑 섞여서 올라오는 냄새. 아, 오늘도 덥겠구나 싶지. 거기에 덤으로 창틀 사이에 박혀 있던 먼지, 눌어붙은 기름때 같은 냄새까지 슬쩍 얹혀. 온 세상이 눅진한 냄새를 품고 숨을 쉬는 느낌이야.

 

출근길 버스 안은 또 다른 냄새의 전쟁터. 누군가는 땀 냄새를 품고 있고, 또 누군가는 향수를 너무 뿌려서 어지러울 지경이지. 이 두 개가 섞이면 진짜 어지러운 냄새가 돼. 거기다 에어컨 바람 특유의 묘한 곰팡이 냄새까지 섞이면, 그냥 숨 안 쉬고 싶은 기분. 하지만 어쩌겠어, 일상은 계속되니까. 코를 스치고 가는 냄새 하나하나를 다 참고 견뎌야지.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면 또 다른 냄새가 거리를 점령해. 고기 굽는 냄새, 튀김 냄새, 후라이팬 위에서 마늘이 지글거릴 때 올라오는 그 향. 배고픈 사람한테 그 냄새는 진짜 치명적이지. 이건 유혹이야. 뭘 먹든 간에 맛있을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켜. 여름이라 입맛 없다고 말하던 사람도 저 냄새 맡으면 바로 밥 한 공기 뚝딱이야.

 

근데 여름은 또 어느 순간, 기분 좋게 스치는 냄새도 있어. 퇴근하고 골목길을 걷는데 누군가 마당에 물을 뿌린 모양이야. 물 뿌린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냄새. 그 묘하게 식은 냄새가 나는 순간, 온몸에서 열기가 조금씩 빠져나가는 기분. 그 순간만큼은 여름이 고맙게 느껴지기도 하지.

 

밤이 되면 또 냄새의 분위기가 바뀌어. 창문 열어놓고 누워 있으면, 바람에 실려오는 여름 밤공기 냄새가 있어. 시원한 듯하면서도 어딘가 풀내음이 섞여 있고, 먼데서 누군가 담배 피우는 냄새도 은근슬쩍 묻어 오고. 여름의 밤은 조용하지만 냄새는 말이 많아. 뭔가 끓어오르는 듯하면서도 차분한 감정. 그런 감정들이 냄새로부터 시작되기도 해.

 

그리고 진짜 여름 냄새 하면, 모기향 냄새를 빼놓을 수 없지. 얇은 선 하나 태워서 집 안 가득 퍼지는 그 냄새. 사실 좋아하는 향은 아니야. 근데 그 냄새만 맡으면 어릴 적 시골집 마루에서 부채질하던 기억이 떠올라. 어른들 목소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트로트, 그리고 손에 들려 있던 아이스크림. 이 모든 게 그 냄새 하나에 들어 있더라.

 

이상해. 냄새라는 건 사라졌다가도 다시 떠오르고, 없다가도 누군가의 옷깃 사이에서 피어오르지. 어떤 냄새는 반갑고, 어떤 냄새는 피하고 싶고, 또 어떤 냄새는 그냥 그리워. 그래서 여름은 눈으로만 기억되는 계절이 아닌 것 같아. 코끝에 남아 있는 냄새로, 몸에 밴 공기로 오래도록 이어지는 계절. 그런 게 여름이지.